종교 임용민 종교칼럼]-가룟 유다의 배신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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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룟 유다의 배신이 주는 교훈
예수님의 12제자 증에 하나였던 가룟 유다의 배신과 그의 비극적 종말은 심히 슬픈 일입니다.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메어 죽은지라..."(마 27:3-5)
성경에 의하면 유다는 분명 자신의 죄에 대해서 진심으로 뉘우쳤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그 죄책을 이이기 못하여 스스로 목매어 죽음으로 그 영혼을 영원히 잃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마태는 바로 앞장에서 또 한 사람의 배신자 제자를 우리들 앞에 생생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바깥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라고 말할 때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앞문까지 나아가니...또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겠노라 하더라...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증명한다 하거늘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 26:69-75)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는 친히 자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씩이나 물으십니다. 이에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대답하는 베드로에게 주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라고 거듭 당부하십니다.
주님을 배신했던 한 제자는 끝내 회개하는 대신 스스로 그 목숨을 끊었고 또한 세 번씩이나 자신의 주를 부인했던 제자는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했고 다시 그는 주께 부름을 받고 자신의 전 생애를 주를 위해 바쳤고 결국에는 주를 위해 순교까지 당함으로 그의 생애를 영화롭게 마치게 됩니다.
창조주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양심이라는 선악을 분간할 수 있는 영적 나침판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양심을 가리켜 우리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이라 말씀했습니다(롬 2:14-15).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 역활을 하는 양심은 비록 우리에게 죄에 대한 깊은 자책과 뉘우침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우리 영혼을 구원이 이르게 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자신의 죄에 대한 양심의 후회와 뉘우침만으로는 그 죄에서 구원할 길이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구주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친히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말씀하셨습니다(요 14:6). 사도들도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행 4:12). 그러므로 양심이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면 어찌해야 합니까?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의원이 쓸데 있느니라...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께서는 친히 말씀하셨습니다(마 9:12-13).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구주를 직접 친히 삼년 반 동안이나 함께 모시고 동거했으면서도 그가 자신의 구주되심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배신하고 결국 그 죄를 뉘우치면서도 구주 앞에 회개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비극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밝히 이르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눅 13:26-27)
종교적 삶이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구주를 바로 알기 이전의 훌륭한 종교 지도자 니고데모가 그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구주로부터 "네가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다."라는 말씀을 듣고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와 구주로 영접했고 훗날 또 다른 주님의 숨은 제자 아리마대 요샙과 더불어 주님을 장사하는 제자로 변하게 됨을 발견합니다(요 19:38-42).
나 자신 역시 10여 년 동안 자신의 죄를 항상 뉘우치며 살아왔지만 그러나 내 모든 죄를 이미 담당해 주신 구주를 바로 깨닫지 못하는 종교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같은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직접적인 영적체험 없이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찬송은 아닙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피와 성령으로 거듭나니
이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 영광 누리도다.
이것은 나의 간증이요 이것은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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