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임용민 종교칼럼]-[미지근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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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신앙]
1963년 7월과 8월 달, 가장 더운 여름철에 나는 논산 신병훈련소에 입소해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침마다 반드시 수통 물을 허리에 차고 훈련장으로 우리는 나갔습니다. 또한 그 수통 물에는 소금을 첨가했습니다. 훈련 중에 전신은 땀으로 흠뻑 젖고 계속 땀을 흘리노라면 심한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 때마다 수통의 물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태양 빛에 이미 달궈지고 짠 소금기 까지 첨가된 그 수통 물은 찜질하고 미적지근한 물로 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같은 미적지근한 물마저 마시지 않는 다면 탈진상태로 쓸어졌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 같은 수통 물마저 모두 떨어지면 햇빛에 달궈진 논바닥 물까지 마셔야 했습니다. 그 같은 물을 이제 다시 마시라고 한다면 단 숨에 입에서 토해 내고 말 것입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 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이는 라오디게아 교회 상태를 책망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엄한 경고입니다. 또한 우리들 자신의 믿음 상태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매우 의미심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보다 스스로 자신은 믿노라 하는 자들을 향하여 하시는 경고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피아의 남동쪽 약 40마일 떨어진 골로새를 향하는 길에 위치한 도시였습니다. 이 라오디게아 편지는 대지진으로 그 도시가 파괴되기 35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라오디게아(Laodicea)는 본래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2세(Antiochus II)의 아내 라오디케(Laodice)를 기리는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이 로마의 속국이 된 이래로 라오디게아는 중요한 무역통로 역활과 양털 옷감 생산 등의 산업발전 등으로 금융의 중심 역활을 하던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라오디게아를 한 번도 직접 방문한 적이 없지만 그곳에 많이 정착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은 이미 전파되어 주의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근 골로새교회 등과 긴밀한 교통을 하며 사도 바울의 서신까지도 함께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내는 서신을 통해 자신이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음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골로새)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저희(라오디게아)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한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골 2:1-2)
그리고 골로새서 마지막에 다시 한 번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골 4:16) 당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계시록은 아시아 일곱 교회들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도 포함되고 있는 것입니다(계 3:14-22).
라오디게아란 '백성들의 통치'라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가 그 교회의 주인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보다 사람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는 현대교회를 잘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파워에 의해 지배를 받는 교회란 마치 하나님교회 운영에 있어서 하나의 회사나 기업체 운영처럼 되어 가는 전형적인 현대교회의 모습이 아닙니까? 농담인지는 몰라도, 목회자들이 회식자리에 모이면 자신들을 목사라 부르지 않고 서로 회장님 혹은 사장님이라 호칭하며 자신들의 신분을 감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같은 목회자들이 목회하는 그 교회 신도들의 영적 상태는 어떻겠습니까? 주일 하루 동안은 가장 성스러운 성도처럼 행세를 하며 나머지 엿 세 동안은 세상 사람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태반인 상태입니다. 성경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라고 강하게 경고하십니다(약 4:4).
이처럼 믿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인도 하지 않는 마치 '미지근한 물'(lukewarm water)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우리 주님은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너희가 차든지 덥든지 하라."는 말씀은 바른 진리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는 냉철한 분별력이 필요하고 주님과 같은 지체를 향해서는 불처럼 뜨거운 사랑을 명하십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뜨겁게)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0-11)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주님과 형제를 향한 사랑은 뜨거울수록 더 좋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거듭난 자들의 확실한 간증이요 증거임을 일깨워줍니다(벧전 1:23).
항상 주여 주여 하면서도 진실로 거듭난 자로서의 분명한 열매가 없는 자의 신앙은 결국 불명확한 신앙을 의미합니다. 과연 내 영혼은 분명히 새롭게 거듭났는가? 나의 삶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가고 있는가? 내 신앙은 미지근한 물처럼 불분명하지는 않는가? 다시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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