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임용민 종교칼럼]-[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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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1서 4:9-10)
1861년, 영국의 한 십대 갱 두목은 심한 우울증 상태로 12월 어느 추운 겨울밤 자신의 포켓 속에 장전된 권총을 넣고 영국 만체스터의 알함브라 서커스 거리를 지나고 있을 때 갑자기 매우 소란한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다툼소리로 착각한 그는 포켓 속의 권총을 움켜쥐고 그 소리 나는 장소 안으로 달려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한 설교자가 큰 소리로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 탕자에 대한 설교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이 청년은 그 설교자가 바로 자신을 향해 외치고 있다는 사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 같은 탕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보내 주신 분이 바로 구주 예수라는 외침은 그 청년의 심령을 깊이 찔렀습니다. 마침내 그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마침내 사랑의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바로 19세기 '영국의 청년설교자'(English Young Preacher)로 널리 알려진 형제교회 설교자 헨리 무어하우스(Henry Lyman Moorhouse)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그 이후로 극적으로 변하게 되었고 또한 그는 자신을 변화시킨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시작함으로 수많은 영혼들을 주께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무디 복음전도 집회에도 초청되었고 또한 시카고에 있는 무디교회에 까지 초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목요일, 무디는 여행을 떠나면서 무어하우스로 하여금 자신을 대신하여 설교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다시 귀가한 무디는 아내에게 그 영국 설교자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그의 설교를 좋아하던가요?“
"물론입니다. 모두가 그의 설교를 매우 좋아하였습니다."라고 아내는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그의 설교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다시 무디는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나 역시 그의 설교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는 이틀 동안 단지 요한복음 3장 16절 한 구절을 가지고 설교를 하더군요. 그리고 당신의 설교와 좀 다르게 그는 특히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매우 깊이 있게 우리에게 강조하더군요."
"그의 설교가 내 설교와 다르다는 말이 무슨 뜻이요?"라고 무디는 되물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악한 죄인들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분명하게 강조했습니다.“
"그런 그의 메시지는 잘못된 것이오."라고 강하게 무디는 대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를 한 번 직접 듣게 된다면 아마 당신도 그의 설교를 분명 좋아하게 되리라 믿어요. 왜냐하면 그의 설교는 바로 전체 성경말씀을 통하여 그 같은 진리를 분명하게 입증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는 처음 창세기로부터 마지막 계시록까지 전체를 통하여 바로 오늘 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라고 하는 아주 분명하고 놀라운 사랑의 증거였습니다."
결국 무디는 일주일을 더 머물며 일주일간 교회에서 설교해 줄 것을 무어하우스에게 청했습니다. 그래서 무어하우스는 일주인간 매일 밤 그는 요한복음 3장 16절 한 구절을 가지고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의 메시지는 날이 갈수록 마치 에스겔의 계시처럼 하늘 성전 동편 문지방으로 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처음에는 발목에 이르고, 무릎까지 오르고, 허리까지 오르고, 마침내는 능히 건널 수 없도록 창일한 바다를 이루듯이 무어하우스의 메시지를 듣는 모든 영혼들 속에는 넘쳐흐르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겔 46:1-5).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무어하우스의 사랑의 메시지는 무디의 영혼 속까지 깊숙이 뿌리내리도록 했습니다.
이제까지 무디의 메시지는 날선 양날의 칼을 예비하시고 죄인들을 심판하실 날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내용이었지만 그 이후로 무디의 메시지도 변하였습니다. 또한 그 이후로 무디는 성경 탐독자로 변하였고 성경을 이해하는 영적 시각도 변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그의 복음 중심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이 구절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영혼이 다시 거듭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불순종한 우리 인간을 먼저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성경의 마지막 계시록 역시 다음과 같이 우리 인간들에 대한 초청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게 22:17) 또한 죄로 인하여 끊어진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를(사 59:1-3) 다시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다리(bridge)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의 영원한 새 생명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
"또 아는 것은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1서 4:20)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심을 알았삽나이까?."(요 6:6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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