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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임용민 종교칼럼]-다시 되 돌아보는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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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되 돌아보는 6.25

한국 6.25전쟁을 '잊혀 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인간은 나이가 많아지면 자연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기억상실증입니다기억력을 완전히 잃은 사람을 알츠하이머 증세라고 말하며 가끔씩 깜박깜박하는 증세를 흔히들 건망증이라 합니다그러나 한 국가나 그 민족은 결코 잊지 말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사학자 신채호 선생은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서문에서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의미 있는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특히 6.25와 같은 한국근세사의 중요사건을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우리가 잊어도 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에서 먼저 1939 9 1일 나치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부터 시작됩니다그리고 동양에서는 1941년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선포함으로 시작됩니다그리고 1941 12 7가미가제 일본 특공대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합니다그러나 이것은 일본의 패망을 자초하는 자충수였습니다. 1945 8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미 원폭기가 날아가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그리고 8 9일 나가사키에 또 다른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결국 히로히또 일본 천황은 1945 8 15일 마침내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이로서 1945 8 15일로 제2차 세계대전도 드디어 종식되었고조국을 잃었던 대한민국은 36년 만에 해방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당시 만 6세로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앞산 봉우리에 봉화가 오르고 사람들마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외치던 광경을 또렷이 기억합니다그리고 이승만 초대대통령에 의해 1948 10 3일 신생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 수립됩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일요일을 틈타 1950 6 25일 새벽 소련제탱크를 몰고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했습니다반면에 전쟁 준비태세가 전연되어 있지 않았던 대한민국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결국 3일 만에 인민군은 서울수도까지 접수하고 여세를 몰아 40여일 후에는 낙동강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만일 임시수도였던 부산마저 북한군에 의해 접수되면 한반도는 김일성 공산천하로 바뀔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미 트루먼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1950 6 27, UN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했고 참가한 21개국 모두 파병결의에 찬성하고 그중 16개국은 UN 연합군으로 7 3일에 한반도에 투입되었고 5개국은 의료지원국으로 도왔습니다특별히 2개월 후, 9 15일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은 전세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게 되었습니다상공에서는 전투기가 맹활약하고 지상군은 적진을 계속 격파하며 마침내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으나 뜻하지 않은 중공군의 참전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바뀌어 3년 동안 서로 밀고 밀리는 씨소 게임형태를 지속하다가 마침내 1953 7 27정전협정(휴전협정체결로 한반도는 38선으로 그 허리가 잘리는 상태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6.25 전쟁이 남김 그 상처는 실로 막대했습니다 1백만 이상의 민간인 희생자들과 전 국토는 폐허상태로 변했습니다또한 매 가정마다 피해자를 낳은 셈입니다우리 5남매 중 형님 한 분도 실종자로 잃었습니다그리고 부모와 가정을 잃은 수많은 고아들이 길 거리를 배회했습니다이 같은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선교단체들의 구호의 손길을 뻗은 것도 특히 주로 미국이었습니다그들은 고아원설립을 돕고 또한 고아들을 해외로 입양시키는 일도 적극 펼치기도 했습니다또한 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 3개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종합의료원이며 특히 아내의 모교이며 근무지기도 했던 국립중앙의료원(NMC)을 설립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시련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또한 국가 정치 체제마저 불안정한 상태를 이어오다가 1960년대가 넘어서면서부터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이 조국을 떠나던 70년대 후반까지도 아직은 괄목할 만한 상태는 못 되었지만 1989, 13년 만에 방문한 고국은 예전의 고국이 아니었습니다여름철 비만 오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살 수 없다던 우리가 살던 강남 영동은 우리가 살던 아파트들은 간곳없고 고층빌딩 숲을 이루고 있었고 강북 서울거리 역시 낮선 곳으로 모두 변해 있었습니다결국 정치계만은 아직도 한참 멀었지만 국가 전반적으로 최첨단이란 표현은 오늘 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수식어가 되었습니다.

  이는 먼저 선각적인 훌륭한 지도자와 우리 국민들 스스로의 피땀이 어우러져 빚어낸 아름답고 자랑스런 성과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 먼 이국땅까지 달려와 이 나라를 구해준 여러 UN 참전국들과 특히 3년간 연인원 1,789,000명의 파병과 또한 전사자 36940부상자 92134실종자 3737명 등의 막대한 희생을 치러준 미군의 꽃다운 젊은이들의 고귀한 희생과 피 흘림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조국도 생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또한 그 이후에도 여전히 오랜 세월동안 한반도를 떠나지 않고 우리를 계속 방어해 준 주한미군의 방패가 아니었더라면 오늘 날의 첨단번영 국 대한민국이 가능했을까 우리 모두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6.25전쟁 경험이 없는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의 안보의식이나 애국사상 결핍상태는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아직도 고국을 사랑하는 먼 이국땅의 우리 교민들만의 기우일 런지요?

  다윗솔로몬에 의해 그토록 번성했던 이스라엘도 결국 영적으로 타락할 때 나라를 잃고 전 세계를 방황하며 핍박을 당하는 민족으로 전락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도 교훈으로 깊이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youngandb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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