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여행 [Andrew’s Travel] 인생은 짧고 미국은 넓다-낭만과 진보의 혼이 어우러진 샌프란시스코 (23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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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s Travel Notes
인생은 짧고 미국은 넓다
낭만과 진보의 혼이 어우러진 샌프란시스코 (231부)
기원전 3천년 전 이미 인디안 오흘론족들이 둥지를 틀고 평화롭게 조상대대 살아가던 샌프란시스코다. 그리고 지금부터 260년 전인 1769년. 서양인으로서는 이곳에 처음으로 닻을 내리고 상륙한 스페인 군인들과 성직자들. 이들이 도착한 날이 성인 프란시스코 (Saint Francisco)의 축일이었기에 이곳 지명을 세인트 프란시스코로 명명한다.
사실 스페인 함대 ‘후안 카브리요’는 오늘날의 미서부 최남단 도시 샌디에고 (San Diego)를 1542년 9월28일 서양인으로서는 최초로 상륙했다. 그리고 227년 후, 북으로 북으로 올라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미션을 만들고, 그곳의 인디안들을 개화시키던 스페인 무적함대와 신부들은 오늘날의 샌프란시스코 땅까지 도착한 것이다.
그들이 샌프란시스코라고 명명하던 해에 샌디에고에는 최초의 미서부 미션 ‘Mission Basilica San Diego de Alcala가 후니페로 세라 신부에 의해 준공된다. 그리고 하루에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약 30마일 간격으로 미션 겸 요세를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샌디에고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성당은 약 600마일 떨어진 샌프란시스코 북쪽 소노마까지 이어진다.
이 길을 스페인어로 엘 카미노 레알 (El Camino Real) 이라고 불렀다, 즉 왕의 길이다. 그래서 오늘날 스페인이 남겨 놓은 21개 성당이 켈리포니아에 남아있는 것이다. 암튼 천하무적 스페인 함대가 지금의 금문교 아래로 즉 천혜의 항구 조건 갖춘 Golden Gate Bay로 들어와서 둥지를 튼다. 그리고 60여년 동안 이곳에 튼튼한 요새를 건설하고 인디안들에게 카톨릭을 전도하고, 농사 짖는 방법과 학교를 세워 이들을 문명화 시키는데 주력한다.
그러나 1821년 스페인은 갑자기 국력이 쇠퇴되면서 멕시코에게 미서부 그대로 넘겨주고 패전병처럼 쓸쓸히 퇴각한다. 1521년 멕시코 아즈텍문명을 멸망시킨 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미와 미서부를 정확히 300년간 통치 후 조용히 물러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세월이 흘러 미국 11대 대통령 제임스 포크에 의해 일어난 1846-1848년 미국과 멕시코 전쟁으로 미국이 승리 후, 결국 샌프란시스코는 오늘날의 미국땅으로 귀속된다.
그리고 전쟁 막바지인 1847년 미국은 정식으로 이곳 명칭을 샌프란시스코로 명한다. 스페인이 떠나간 후, 27년 만에 앵글로 색슨 즉 영국인들이 주인 자리를 다시 차지한 셈이다. 그런데 차지하자 마자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1848년 오늘날의 샌프란시스코를 만들 수 있었던 즉 성장의 발판이 될 대형사건이 터진다. 바로 황금 발견이었다. 복도 많다많다 이리 많을 수가 없다.
1848년 1월24일. 세클라멘토에서 목재소를 운영하던 ‘죤 셔터’의 Shutter’s Mills 공장에서 책임자로 일하던 ‘제임스 윌리암 마셜’은 공장 옆 강가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물체를 발견한다. 그리고 주인 존과 함께 그 물체가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실험을 해 본다. 그것은 영락없는 금이었다. (다음 232부 게속)
Andrew Kim은 여행 및 사진작가로서 미국 전 지역에서 활동 중이며, 라스베가스 한국문화센터에서 미서부여행 소개와 안내도 한다. 대표 저서로는 ‘인생은 짧고 미국은 넓다’ 등이 있다. (투어문의: 714.625.5957 / 유튜브방송운영: Hi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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